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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진, <꽁트 을지로> Lim Hyojin, Conte Euljiro. 2025

​책 사진. 장혜진 

초판 펴낸 날. 2025년 11월 14일

사진. 임효진 

글. 임효진, 전가경

기획, 편집. 전가경

책 디자인. 정재완

번역. 전현배  

인쇄 & 제본. 케이비팩토리 

펴낸곳. 사월의눈

발행부수. 500부

면수. 520쪽

크기. 120(w) x 180(h) x 38(d)mm

제본. 사철, 노출 책등 

 

ISBN 979-11-89478-28-5 (03660)

43,000 won

책 소개 
 

『꽁트 을지로』는 사월의눈의 네 번째 리듬총서이자, 사진가 임효진의 세 번째 사진책이다. 이 책은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신당동까지 약 3km 직선을 따라 펼쳐지는 을지로 일상을 기록한 사진집이자, 일종의 ‘을지로 질감 채집록’이다. 조선시대 약업 중심지였고 근현대 산업화의 축약판이기도 한 을지로의 역사·산업적 맥락을 배경으로, 임효진은 행인과 비둘기, 철거 현장, 공사장, 간판 등 을지로의 다양한 장면을 날것 그대로 포착한다. 그의 사진에는 해학과 연민이 공존하며,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비규범적 접근이 드러난다. 사진 사이사이에 자리한 아홉 편의 콩트는 실제 신문 기사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것으로, 을지로의 시간과 공간을 과거와 현재, 허구와 사실이 뒤섞인 제3의 지대로 옮긴다. 도보 40분 남짓한 거리의 풍경이 500여 쪽의 두툼한 책 한 권에 담겼다. 『꽁트 을지로』는 언젠가 변화할 을지로의 다층적 풍경과 시간을 차분히 응시하는 기록으로서 경우에 따라, 을지로 도보 여행에 대한 조금은 독특한 여행 가이드북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 

책 속으로

​​

11쪽

동대문운동장에서 시장이 비집고 앉은 자리 옆에는 조셉 프래리(57) 씨가, 다른 한쪽에는 김미선(26) 씨가 있었다. 조셉 프래리 씨는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즐기는 듯했고, 한국어로 말하고 싶어 했다. 반면, 김미선 씨는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어디까지 가십니까?」라는 시장의 질문에 조셉 프레리 씨는 「이따 퇴계로에서 삼계탕 먹어, 친구랑.」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 거주 7년 차다. 김미선 씨는 「명동성당에 농성하러 간다.」라고 답했다. 기자가 눈짓하자 시장이 또 질문했다. 「요즘 뭐가 제일 걱정입니까?」 김미선 씨는 「직장을 잃었다.」라고 이야기했고, 조셉 프래리 씨는 시장의 뜯어진 재킷 단추를 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조셉 프레리 씨와 김미선 씨는 을지로 3가에서 내렸고, 시장은 시청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시장의 임기 내 3대 목표는 경제위기 극복, 지방자치제도 확립, 정보화와 세계화 추진이었다.

 

177쪽

1974년의 어느 12월,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간. 식당에 말쑥한 차림의 남성이 들어와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을지로3가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왕 씨는 ‘기자’라고 적힌 명함을 받아서 들었다. 

「장복수 씨를 아시죠?」 

군산과 서울에서 행상을 하며 필요할 땐 자신의 식당 일을 돕던 동포에게 왕 씨는 건물 지하를 빌려줬다. 동포는 지하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가 하면, 주방에서는 식자재 관리를 했다. 왕 씨는 그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했다. 자신의 가게 입구에는 동포가 2년 전 제법 큰 미술 대회에서 입상했다는 작품을 걸어두기도 했다. 1967년에 부친이 돌아가시고 번지수를 따서 가게 이름을 바꾼 후 몇 해 동안 장사는 아주 바빴다. 동포인 장복수 씨를 주방에 채용한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

 

274-276쪽 

만배 씨는 뷰익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서울운동장 앞을 지나 을지로6가에서 뷰익은 미 극동 병단(FAD; Far East District)으로 향했고 바짝 붙어가던 만배 씨의 택시도 어찌저찌 부대 안으로 진입했다. 만배 씨는 흔히 말하는 광복둥이로 청계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소시지와 통조림을 먹고 자랐지만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와 본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뷰익이 멈춰 선 벽돌 건물 앞엔 ‘Far East District’라고 적혀 있었다. G.K.와 하사가 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태극기는 없었다. 뷰익이 잠겨 있지 않았던 틈을 타서 만배 씨는 차 안에서 태극기와 대시보드에 쌓여있던 8트랙 카트리지 중 하나를 챙겨 부대를 급하게 빠져나왔다.

509쪽

상쾌하면서도 발랄하고, 때로는 풍자적이기도 한 그의 접근법은 을지로라는 공간의 질감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행인들, 비둘기, 철거 현장, 공사장, 각종 간판들… 이를 두고 누구는 ‘한국적 버네큘러’나 ‘키치’로 간단히 분류할 수도 있지만, 이는 다소 피상적인 평가가 아닐까 싶다.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은 거대한 콜라주로서 겹겹이 쌓인 시간을 추적한다. 그래서 나에게 사진가 임효진은 일상 속 방치된 채 존재하는 시간의 중첩을 찍는 사진가이다. 엇갈리거나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의 시간이 그의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이 책엔 임효진이 쓴 글도 함께 실렸다. 그는 종종 짧은 에세이나 소설을 쓰는데, 이번엔 실제 신문 기사에서 소재를 가져와 아홉 편의 콩트를 완성했다.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이 팩션(faction)들은, 곧 ‘삽화(揷話)’가 되어서 또 다른 삽화(揷畵)인 사진 속 을지로를 허구와 현실 사이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을지로는 상상과 기억이 엉킨 이야기 공간이 된다.

  • 전가경, 「사진가 임효진의 을지로 삽화(揷話) 혹은 삽화(揷畵)」

 

작가 소개

임효진

도시의 스펙터클에 관심을 가지고 사건을 염두에 둔 장면을 수집한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기형적으로 매달린 것, 죽었지만 잘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있다. 사진집으로 『모텔 꿈의 궁전』(2017), 『서울저널 2017–2020』(2020)이 있다.

Instagram @seoul_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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