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 <어서 오십시오> Choi Yohan, Letters on Korea. 2024
책 사진. 장혜진
초판 펴낸 날. 2024년 11월 2일
사진. 최요한
인포그래픽. 이상현
글. 최요한, 이상현, 전가경, 정재완
번역. 전현배
기획, 편집. 전가경
책 디자인. 정재완
인쇄 & 제본. 케이비팩토리
발행부수. 500부
사진. 292장
인포그래픽. 11장
면수. 328쪽
크기. 148(w) x 225(h) x 250(d)mm
제본. 사철 오타바인드
ISBN 979-11-89478-26-1 (03660)
50,000 won
책 소개
사진가 최요한의 [어서 오십시오]는 사월의눈 두 번째 리듬총서이자 첫 번째 리듬총서 [대구는 거대한 못이었다]를 잇는 출판사의 자체 기획물이다. 사월의눈은 2022년 5월, 최요한에게 한국의 다국어 경관 기록을 의뢰했다. 확산 중인 국내 다국어 경관을 포착함으로써 변화하는 한국 시각문화의 한 단면을 기록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최요한은 서울 구로동과 대림동 및 이태원 등을 시작으로 경기권의 의정부와 동두천 및 경상권의 논공과 김해 등지로 촬영지를 넓히며 1년 반 동안 한국의 다국어 경관을 수집했다. 중국어 간체자에서부터 러시아어 키릴문자, 싱할라 문자에 이르는 거리 글자들 뿐만 아니라 미군 부대 주변 상권의 영문 로마자 도 대상이었다. 이 글자들은 한국 ‘원’주민들은 미처 지각하지 못하는 어떤 무의식을 표상한다. ‘한국’이라는 토양에 세워졌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해독이 불가능한 언어로서 -책의 노란색 지면이 암시하듯- 구글 렌즈의 실시간 자동 번역만이 문자 생태계의 이면을 전달한다.
책에는 언어 경관과 함께 작가가 촬영지에서 느꼈을 정서를 직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사진도 수록했다. 작가 특유의 스산하면서도 격정적인 사진이 상대적으로 정밀하게 포착된 언어 경관과 정렬됨으로써 기록물로서의 사진과 주관적 표현으로서의 사진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한편, 작가는 밤 시간대에만 사진을 찍었는데, 해외 이주민 및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이자 비유이다.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 이 ‘낯선’ 문자 생태계는 느리고 완만하게 확산 중이다. 이 풍경을 관찰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겪고 있지만 동시에 간과하고 있는 어떤 점진적 변화에 대한 자각이다. 언어 경관에 대한 해석으로서 대구시 주무관이자 독립 도시 연구가인 이상현의 인포그래픽이 동원된다. 최요한이 집요하게 담아낸 문자 생태계를 해석할 수 있는 단서들이다.
책 속으로
“언젠가 명동 거리를 걸으며 마주친 글자는 자본의 증표였다. 관광객이 줄을 서고 중국어와 일본어 중심으로 형성된 언어 경관은 돈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함이었다. 요사이 대구 교동 거리는 일본의 어느 유흥가를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가나 문자와 한자로 쓰여있는 간판과 메뉴판은 읽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소비하는 것 자체가 힙하기 때문에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어떤 문화를 소비의 대상으로 간주할 때, 글자는 소비를 위한 장식품이다. 하지만 최요한 사진가가 본 글자는 삶과 노동의 글자다. 중국,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모여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들이 자생적으로 형성한 언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의정부, 동두천, 평택의 미군기지 주변의 언어 경관도 부대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담고 있다. 거리 글자는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다. 거리 글자는 건물 외벽이나 표지판 등에 기생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증식한다. 우리의 삶이 우연과 측흥의 연속이듯 삶을 반영하고 있는 거리 글자는 끊임없이 덧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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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완, 「한국의 다국어 거리 글자」 중
“이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 한국 내 이민자들과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먼저, 이들에 대한 지리적 데이터와 통계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데이터의 선명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민자들의 특성상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거나 비공식적으로 체류하는 미등록 이민자 수도 많아 정량적 데이터로 이들의 삶을 추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생활 흔적'이야말로 이들의 영역과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유용한 대안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슬람 사원과 같은 건축물처럼 이주민의 유입으로 도시 풍경을 극적으로 바뀌는 사례가 종종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물며, 대부분은 기존 생태계 안에서 부분적 변화를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도시 경관 부속물로서의 간판을 포함한 거리글자이다. 외국 이민자들이 다수 모이는 장소에서는 상호 간의 상업적 활동이 이뤄지기 마련인데, 이는 자연스럽게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구성된 간판이나 거리 글자 제작으로 이어진다. 고로, 특정 언어의 밀집도는 해당 언어 사용자, 곧 이민자들의 밀도를 방증하는가 하면, 이민자 커뮤니티의 특성을 직간접적으로 나타낸다.
과거에는 미군 부대 주변이나 차이나타운의 영어와 중국어 간판들이 도시 속 유일한 외국어 경관이었으나, 최근에는 러시아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그간 상대적으로 생소한 언어가 중심인 지역 커뮤니티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이제 대부분의 한국 도시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되었다. 김해나 안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에 따른 노동력 부족으로 오히려 소도시에서는 한국인들이 보이지 않는 존재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하지만, 서로를 보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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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보이지 않는 것을 기록하기」 중
“전가경: 책 제목을 상의하는 과정에서 '어서 오십시오'라는 제목을 제안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해당 제목을 제안했는가.
최요한: 몇몇 장소에서 '어서 오십시오' 라는 커다란 간판을 볼 수 있었다. 특히, 판짱특구로 지정된 장소에서 그랬다. 길 초입에 무지개다리 같은 것을 만들어 글자로 크게 표시해 놓았다. 마치 이 지역을 보고 싶으면, 이 글자 밀을 통과해야 한다는 식의 메시지로 읽혔다. 그 외에도 상점 초입에 카펫이나 시트지로 만날 수 있어서 나에겐 인상적인 문구였다. 해당 표현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이주 노동자를 환영 혹은 경계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인식을 함축적으로 담았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밀집된 곳을 관광특구라고 지정해 놓고서 '어서 오십시오' 표기하는 게 아이러니했다.
전가경: 좋은 아이디어였다. 이번에 촬영한 사진의 또 다른 특징으로 밤 풍경을 들 수 있다. 왜 밤을 배경으로 찍었는가.
최요한: 그간 완결된 작업에는 항상 인물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 의정부, 동두천, 평택, 대림동, 동대문 등을 탐색할 때 일부러 낮에 방문하여 인물을 촬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림동에서 그곳 지역민들이 전동드릴과 수공구를 갖고서 퇴근하는 장면을 보았다. 얼핏 들으니, 중국어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따라가며 촬영을 요청해 볼 생각이었지만 이미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어서 포기했고, 대신 그들이 인근 맛있는 식당으로 가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그들을 뒤따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식당으로 들어갔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이후 식사를 하고 나왔더니 낮과 전혀 다른 풍경을 보게 되었다. 관광객들이 사라진 거리엔 동네 주민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무엇보다 날이 어두워진 만큼 글자들이 도드라져 보였다. 간판들이 스스로 빛을 내뿜고 있더라. 그 풍경이 크게 와닿게 되면서 밤 풍경을 찍게 되었다. 밤 풍경만 촬영한 건 이번 프로젝트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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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 전가경, 「대화」 중
작가 소개
최요한
1989년생.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스물세 번의 이사를 다니며 현재 서울 정착을 시도 중인 사진가. 수많은 이사 탓에 여러 장소를 떠도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낯선 곳을 친숙하게 느끼기도 한다. 순례자들이 길을 걷는 이유를 작성한 종이와 그들의 초상사진 그리고 길의 정서를 엮어 만든 《Nonlinear Frances〉 연작을 2017년에 시작했으며, BAH ‹Nonlinear Portugues) 2 ‹Nonlinear Primitivo> 작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분단의 그림자 같은 상황을 긁어모으는 〈Side California〉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깊은 낮과 밝은 밤)(OS, 서울, 2020). 《Nonlinear)(공간 극, 서울, 2018) 등의 개인전과 《길 위의 파롤>(해든뮤지엄, 강화도, 2024), 《JRNL Show》(Fotofilmic, 보 아일랜드, 밴쿠버, 2024>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뮤지엄한미 24/25 MH Talent Portfolio(뷰리뷰 부문)와 2023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사전프로그램인 포트쫄리오 리뷰에 선정되었다.
참여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