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Jungeun Lee, <Belonging Nowhere>, 2022 

​책 사진. 장혜진 

기획 및 인터뷰. 이정은   

사진. 이정은, 양진아     

인터뷰이. 오한서, 안제리, 연, 요괴,

맥주, 유니, 유연주, 굉여 

인터뷰 교열. 전성진 

에세이. 정은영  

제목 레터링. 노은유(소리체) 

책 편집. 전가경 

책 디자인. 정재완 

인쇄 제본. 케이비팩토리 

 

초판 발행. 2022년 3월 25일

발행부수. 300부

면수. 192쪽

크기. 178(w) x 257(h) x 9(d)mm

제본. 무선제본

 

ISBN 979-11-89478-08-7 (03660)

33,000 won

책 소개

나 또한 한 명의 여성으로서, 퀴어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고민해왔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결과물이 이 책이 되었다. 나는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어떤 신념이나 포부를 가진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일상과 맞닿아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동양 여성이자 퀴어로 살고 있어서 내 방식대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행동을 하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사실은 나보다 용기 있는 여성들의 입을 빌려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책을 펼치는 사람들에게도 이들의 목소리가 가닿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용기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 이정은, 「프롤로그」 중 

사월의눈 19번째 책 『Belonging Nowhere』는 이정은 작가의 퀴어 페미니즘에 관한 프로젝트로서 아홉 명의 퀴어 페미니스트와의 인터뷰가 실린 인터뷰집이자 관련 사진과 동영상 클립이 수록된 작품집이다. 독일에 체류 중인 작가는 2019년도부터 2년여에 걸쳐 유럽(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에서 생활하는 20~30대 한국 퀴어 페미니스트 8명을 인터뷰하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베를린에서 새 출발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오한서, 젠더 이분법을 거부하는 안제리, 레즈비언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찾기 힘들었던 연, 한국에서 모델로 활동하며 성차별을 경험한 요괴, 암스테르담에서 디나이얼(denial) 시기를 극복한 유니, 여성 운동가이자 예술가로 활동하는 맥주, 프랑스에 정착하는 삶을 꿈꿨던 유연주, 레즈비언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며 베를린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굉여 등 이들 8명의 ‘여성-이민자-레즈비언’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실려 있다. 책에는 인터뷰이의 초상 사진뿐만 아니라 퀴어페미니스트의 감정 혹은 상태에 대한 영상적 은유로서 다양한 사진과 동영상 클립이 수록되어 있다. 

8편의 인터뷰와 독일에 거주 중인 작가의 심정을 담은 단상들은 ‘동양 여성’, ‘레즈비언’, ‘이민자’의 위치를 가로지르는, 보기 드문 교차성 페미니즘의 사례들이다.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작가는 독일에서 인종차별이라는 새로운 억압적 기제를 맞딱뜨리게 된다. 퀴어라는 성정체성에 동양 여성이라는 또하나의 정체성이 포개지면서 유럽 내 작가의 위치는 새로운 ‘교차로’에  서게 된다. 작가 개인의 자아정체성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궁극엔 유럽 내 동양 퀴어 페미니스트에 대한 성정체성 문제로 확장된다. 

 

이 책에 수록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이 한국의 퀴어 페미니스트들을 대변하진 않는다. 다만, 이들이 타국을 선택하고 이주를 결정해야만 했던 이유와 배경, 여전히 남아 있는 차별적 시선과 제도들, 어딜 가나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위치에 관한 담화들은 결국 가장 소박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함께 모색하고 교정해 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책은 묻는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의 바람대로- 지금 어딘가 자신의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고 주저하고 있을 이들에게 용기로 가닿기를 희망한다. 

책 말미에 수록된 정은영 미술가의 추천사가 책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차례 

프롤로그

오한서 Hanseo Oh ----- 두 번째 삶 New Leaf

안제리 Jerry Ahn ----- 성별 알 수 없음 Sex: Unknown

연 Yeon ----- 더 나은 자리 UPWARDS

요괴 Yogue ----- 여자도 사람이다 Fair Enough

맥주 Beer ----- 내가 있어야 할 곳 Where I Belong

유니 Yunie ----- 그레이 존 Grey Zone

유연주 Yeonju Yoo ----- 틈 Crevasse

굉여 Fabulous Woman ----- 생존전략 Surviving Strategy

에필로그

정은영 - 만져져야 할 세계: 이정은의 『Belonging Nowhere』

책 속으로

 

훨씬 자유롭고 ‘이게 진짜 연애구나’라고 느껴요. 그냥 좋아요. 상대방이 여자여서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소위 말하는 ‘여자처럼’ 굴지 않아도 되고 상대방도 마찬가지죠. 애인은 나를 구속하거나 관계를 맺고 협박하는 등의 심리적 폭력을 전혀 휘두르지 않아요. 내 외모뿐만 아니라 행동, 취향, 그리고 모든 결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요. 지금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나는 ‘오한서’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둘이 함께 의논하고 결정할 수 있어요. 성적으로도 비로소 주체성을 되찾은 것 같아요. - 오한서, 「두 번째 삶 New Leaf」 

 

한국과 독일의 성소수자에 대한 배려의 차이를 느낄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베를린 비자 신청서의 성별 체크 항목에는 ‘Mann(남성)’, ‘Frau(여성)’, ‘Geschlecht Unbekannt(성별 알 수 없음)’라고 쓰여 있어요. 생물학적 성별과는 무관하게 내가 ‘느끼는 대로’ 성별 표기를 할 수 있다니 놀라웠어요. 성정제청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거예요. 비자뿐만 아니라 면허, 여권 등 대부분의 공문서에도 성중립적 표기를 할 수 있어요. 그동안에는 ‘여자’ 아니면 ‘남자’여야만 했는데, 여기서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해방감을 느꼈죠.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회를 만난 것 같았어요. 내 정체성을 존중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요. 그래서 독일에 온 이후로 나의 성정체성에 대한 자신감이 더 생기고 당당해지는 것 같아요. - 안제리, 「성별 알 수 없음 Sex: Unknown」

 

나는 정신 질환자이자 레즈비언 여성이고 타투이스트이기도 해요. 어디를 가나 정상인 취급받기는 힘들죠. 그런데도 나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 고정관념,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어요.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어차피 힘들게 살아가야 한다면, 외국에서 사는 게 나을 것 같았죠. 내 삶의 목표가 ‘더 나은 자리 찾기’거든요.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있는 프랑스를 선택했어요. 물론 여기서도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만 대신 한국에서 얻지 못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가 내가 찾던 자리라면 정착해야죠. 껌딱지처럼 붙어 있을 생각이에요. - 연, 「더 나은 자리 UPWARDS」

 

독일에는 카를 라거펠트(Karl Lagerfeld), 클라우스 보베라이트(Klaus Wowereit), 토마스 히출슈페르거(Thomas Hi tzlsperger)와 같이 성공한 게이도 많아요. 동성애자를 무시하기에는 이미 사회에 성공한 퀴어가 많은 거예요.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그들을 배제하는 게 경제적, 사회적 손실인 거죠. 이런 걸 보면 성소수자를 향한 한국의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퀴어의 등장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퀴어가 우리 사회 어디에나 존재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 경제적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 요괴, 「여자도 사람이다 Fair Enough」

해외에 계신 모든 동양 여성들이 타지에서의 삶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사실은 나 자신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나는 스스로 선택해서, 큰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 내가 태어난 곳을 떠나 독일에 왔어요. 내게 아주 구체적인 전망과 계획이 있었다기보다는 ‘이건 아니다’라는 마음이 나를 무작정 움직이게 했고, 그동안 모아둔 약간의 돈과 모부님을 설득해서 받은 지원으로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여러 가지 조건들에 들어맞지 못했으면 진행과 실현이 어려웠을 거예요. 여러 면에서 운이 좋아서 지금 독일에서 살고 있죠. 그런데도 씁쓸한 순간들을 계속해서 맞닥뜨리게 돼요. 하지만 한국에서 여성으로, 퀴어로 사는 것보다는 여기서 이방인으로 사는 게 내가 짊어져야 했던 짐을 비교했을 때 더 가벼워졌다고 느껴요. 속도가 빠른 한국 사회에 지쳐서 그런지, 독일의 느린 속도랑 내가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 맥주, 「내가 있어야 할 곳 Where I Belong」 

 

네덜란드의 인종차별은 다른 나라와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미세하지만 더욱 노골적으로 이루어져요. 물론 런던에서도 인종차별은 당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나의 존재 자체를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면, 여기서는 동양인에게 관심을 두고 다가오면서 “니하오”라고 하거나 “너 중국인이야?”라고 당당하게 물어봐요.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하고 호기심이 넘치지만, 이민자와 동양인에 대한 혐오를 돌려 말하는 법이 없이 직설적으로 말하고 그 표현도 다양해요. - 유니, 「그레이 존 Grey Zone」

물론 성차별도 존재해요. 프랑스에서 구직할 때 가장 많이 겪는 차별이 1위 성차별, 2위 인종차별, 3위가 외모차별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죠. 학교에서도 전시나 미술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성 비율이 어떤지 연구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아직도 있을 만큼, 이들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남자들이 없다는 점, 그리고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주요 사안으로 다루고 성평등 교육을 중요시한다는 점이 한국과는 달라요.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교에서도 다양한 퀴어 및 페미니즘 워크숍을 진행해요. - 유연주, 「틈 Crevasse」

아니요. 독일이 성소수자에게는 관대할지 몰라도 인종차별이 심해요. 일상적으로는 ‘니하오’와 ‘칭챙총’을 들어요. 베를린에서 살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거죠. 항상 같은 레퍼토리에요. 남자 무리 중 한 명이 크게 “니하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낄낄거리면서 지나가요. 무시하고 지나갈 때가 많지만 내가 대답을 할 때까지 들러붙거나 몇 차례고 더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전 애인이랑 골목길을 걷는데 주정뱅이가 우리를 쫓아와서 돌을 던진 적도 있어요. 다행히 맞지는 않았지만 식겁했죠. 그런데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여성이라서 혹은 레즈비언이어서 돌을 던진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셋 다 이유가 될 수도 있고요. - 굉여, 「생존전략 Surviving Strategy」

독일은 내 삶의 다른 차원을 열어주었다.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 그동안 해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겪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면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길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순간도 있다. 타지에 있으면 알고 싶지 않아도 나 자신이 이곳에서 어떤 존재이며, 사회에서 정해주는 위치가 어디 즈음인지 보게 된다. 한국만 떠나면 내 세상은 크게 달라질 줄 알았는데, 세상 그 어디에도 내가 정착할 곳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럴 때면 무엇을 위해 여기서 살고 있는지, 한국에서 여성 퀴어로서 사는 것보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는 게 정말 더 나은 삶인지 묻게 된다. 나에게 완벽히 어울리는 곳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제자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 채 계속 헤매야 하는 걸까. 나는 어디쯤 있는지, 진짜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 이정은

추천사

 

이정은이 이들의 삶을 담아내기 위한 실험을 거듭해야 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 긍정성의 삶을 탐색해 구체화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학도인 그에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삶의 모양을 미술적이고도 구체적인 이미지로 구성하는 일이었을 테다. 시종일관 솔직하고 분명한 태도로 인터뷰에 응한 여덟 명의 협업자들은 ‘말’이 사라진 ‘이미지’의 순간에서조차 명징하게 용감하다. 눈치 보지 않는 응시, 포효하는 분노, 미래를 향한 기대, 조용하지만 단호한 결단과 같은 그들의 단단한 마음과 상태가 사진, 혹은 영상 이미지를 통해 전해진다. 한편, 이미지 속 그들은 모두 어떤 형태 혹은 물질을 만지고 있다. 그들이 만지는 것들은 단단하지만 동시에 유연하다. 고정되었다가 흘러내리기도, 멈춰있다가 이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물질성은 그 이름부터가 모순적이기 짝이 없는 ‘액정(液晶, liquid crystal)’ 화면에 맺힌다. ‘햅틱(haptic)’으로서의 미디어 세계는 세심하게 배치된 이미지들과 상호침윤되면서 아주 잠시간의 클라이맥스를 만든다. 만짐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감각들, 그 물질의 질감, 크기, 무게, 움직임과 온도의 감각을 통해 그들이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이들이 원하는 세계는 언제쯤 손이 닿는 곳으로 더 가까이 다가올까? 단지 상상의 대상으로만 그치지 않는, 엄연히 만져지는, 구체성의 세계를, 그들의 이 미명과도 같은 긍정성이 기꺼이 수용되는 ‘더 나은’세계를, 이들은 곧 만날 수 있을까? - 정은영, 「만저져야 할 세계: 이정은의 『Belonging Nowhere』」

작가 소개

이정은(1993~)은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독일 카를스루에(Karlsruhe)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카를스루에 국립조형예술대학교(Hochschule für Gestaltung Karlsruhe)에서 미디어아트 (Medienkunst)를 전공하고 있다.


 

참여자 소개

 

정은영은 미술작가다. 주로 비디오, 퍼포먼스등의 형식을 통해 페미니스트-퀴어 미학, 정치학, 방법론을 타진한다. 성별규범에 불응하는 존재들을 작업안으로 불러 모으는 일에 관심이 있다. 대표작으로 〈동두천 프로젝트〉(2007~2009), 〈여성국극 프로젝트〉(2009~현) 등이 있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