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텍스트 디자인 02
손승현의 『밝은 그늘』
2014년 6월 21일~30일. 합정동 사각형갤러리
손승현의 『밝은 그늘』은 북방의 감각이 야금술적이다. 은판사진의 수시간 이질적인 빛들의 종합 같은 질감이 쨍하다. 감청의 하늘, 어디에 초점이 있는지 모를 시선, 할머니의 신체 육박, 무한한 정지와 순간적인 섬광의 퍼포먼스 교차, 사진의 금기를 어기며 먼 곳에서 돌아오는 ‘되기의 감각’, 유동하는 대지와 에너지의 흐름, 마음의 교신 등등이 느껴진다. 좋다. 딱 좋다. 이 사진집 말미에는 사진작가 손승현, 사진평론가 이영준, 안무비평 김남수 등 3인의 좌담이 실려있다. — 김남수 (안무비평가)
손승현의 사진집에 실려 있는 대담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동아시아와 북미원주민의 연결고리를 문화인류학적으로 규명한 통찰이 번뜩이는 대담이다. 손승현의 사진에 대해서 문화인류학적으로는 이해가 갔으나 정작 사진미학의 차원에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지 잘 몰랐으나 이 대담을 읽고 나니 비로소 그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 신문수 (서울대 교수, 미국문학)
사진에서 사진가와 사진 찍히는 대상은 일방적인 관계이다. 대상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진가는 대상의 배경을 사진의 프레임으로 탈맥락화한다. 맥락이 사라진 자리에 사진가 혹은 사진을 보는 다른 이들의 이해관계가 개입된다. 하지만 노파의 사진에서 사진가는 그 안에 포섭되어 버렸다. 피사체의 포획물이 되었다. 이 노파 사진이 여느 인물사진보다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이유는, 대상과 사진가의 관계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손승현은 “이 책을 통해 어떤 희망적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가와 피사체간의 평등한 관계. 그것은 곧 나카자와 신이치中沢新一가 말한 대칭적 인류학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것이야말로 ‘그늘’에 드리워진 어두움, 야만, 비문명 등의 부정적 인식을 걷히는 출발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의 이름인 ‘밝은 그늘’처럼. 희망의 메시지로서 노파의 사진이 책의 마지막에 자리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양가적 가치의 충돌 그리고 혼탁함. 그 속에서 새로운 그늘이, 새로운 밝음이 이야기되기를 사진가 손승현은 말하고 있다. — 전가경, 『밝은 그늘』 본문에서
1.
지난 2013년 11월. 사진책을 만드는 작은 출판사 사월의눈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손승현의 사진들을 담아낸 사진책인 『밝은 그늘』을 펴냈다. 사월의눈이 만든 두번째 사진책이었다. 국내 비전향 장기수부터 시작하여 북미 원주민 그리고 최근에는 ‘코리아 디아스포라’라는 이름으로 동북 아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목민 한국인들까지 문명사적이며, 인류사적인 문제들에 집중해 왔던 손승현은 사진책 『밝은 그늘』에서 2003년도부터 2012년도까지 북미, 캐나다 그리고 몽골에서 찍은 사진 57장을 선보였다.
2.
사각형 갤러리의 제안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사진책 『밝은 그늘』이 내뱉는 자기고백이 되고자 한다. 우리가 책이라 부르는 그 어떤 사물은 어디까지나 완성품일 뿐, 완성되기 까지의 여정에 대해선 함구하기 일수다. 전시는 사물로서의 책이 지니는 견고한 물성을 허물어 뜨리고자 한다. 책의 재료가 되었던 30여점의 사진들이 전시장 벽면에 재배치되고, 사진가 손승현의 ‘또다른’ 책들이 그의 사진세계를 설명하는 작은 족보로서 기능하게 된다. 『밝은 그늘』에 수록된 대담 중 일부가 인용문이란 형식으로 제시된다. 그동안 책이 되기 위해 재료들이 모였다면, 이번 전시에서 이 재료들은 전시장이라는 또 하나의 다른 공간에서 각자 다른 위치를 찾게 된다. 그건 원재료들의 제자리 찾기 혹은 임시거처이기도 하다.
3.
(모든 전시가 그렇듯) 이번 행사에도 전시 외의 다른 행사가 마련된다. 전시를 여는 날인 6월 21일(토)에 사진가 손승현과 사월의눈 전가경 그리고 정재완이 모여 『밝은 그늘』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아마도 이 대화는 전시장에 놓인 재료들에 대한 좀 더 친절하고도 확장된 해설이 될 것이다.
4.
참고로, ‘사진 텍스트 디자인’은 전가경이 홍익대 대학원 재학 당시 석사논문으로 썼던 〈텍스트로서의 사진과 이미지로서의 사회:『트웬』의 사진다루기〉의 일환으로 2010년에 마련한 전시제목이자 책 제목이었다. 사월의눈은 당시 전시와 책의 의미를 연장해 나간다는 취지에서 이번 전시 제목을 ‘사진 텍스트 디자인 02’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행위는 앞으로 03, 04란 꼬리표를 달며 계속될 것이다.